일류학교를 나온 사람들의 퇴화과정 보다 좋은 학교를 나와, 보다 좋은 직장에 첫 취직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 바래온 희망사항이다. 경기고, 서울대 그리고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취직을 하면 이는 엄청난 자랑거리다. 가장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개울가의 송사리 떼처럼 오글오글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일류학교 출신들은 과연 행복한가. 그들의 장래는 밝은 것인가. 필자에게 비친 젊은 1류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으며, 거기에서 이사진으로까지 승진한 50대 1류들은 전문가도 아니고 경영자도 아닌 어설픈 존재로, 그들의 정신은 제2의 인생을 개척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무기한 존재로 퇴화돼 있었다. 한국적 경영시스템은 사람을 감시하고 옭아매는 것을 기본 철학으로 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윗자리에 앉았다 하면 옭아매고 통제할 궁리부터 한다. 경영개선을 위한 연구를 시켜보면 그 개선 안에는 언제나 더 많은 통제 수단이 들어 있다. 통제 마인드 때문에 일하는 사람보다 통제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통제를 하려다 보니 피라미드 형 다단계 결재조직이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다. 통제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기업 이윤이 경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경영자는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 잭 웰치의 명언이 있다. “Managing less is managing more". 간섭을 안 하는 것이 경영을 잘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통제를 열심히 하는 것을 경영을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일류기업의 통제실태를 하나만 살펴보자. 그야말로 전근대적이다. 예산을 사용하는 데에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만 일류기업의 예산 통제 방법은 단 1%의 창의력도 수용하지 않는다. 상급자 앞에서도 자유가 없지만 예산 앞에서는 더더욱 자유가 없다. 현장에서 사용하는 예산은 현장 나름대로의 사정과 창의력에 의해 효용가치를 높일 수 있다. 창의력은 본부에 있는 참모에 의해 창출되지도 않으며, 시간표에 따라 유발되는 게 아니다. 어제는 A가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오늘은 B가 최상의 방법일 수 있다. 예산은 그런 창의력을 수용하고 격려하도록 융통성 있게 운용돼야 한다. 하지만 일루 기업의 예산 통제 방법은 현장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본부 참모가 옭아매는 식으로 편성하여 쥐어짜는 식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본부 참모가 현장 사람들을 얕보고 불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경비를 이런 식으로 통제하면 절약 액보다 손해가 더 많다. 현장에 나간 건설 자문 직원은 연봉 7천만원 짜리의 고급두뇌다. 이들은 한 달에 기껏해야 200만원도 채 안되는 현장경비 예산을 가지고 이리 저리 짜 맞추면서 “ 가라행정”을 하느라 전문분야에 사용해야 할 그야말로 귀중한 시간을 축낼 수밖에 없다. 시공의 경제성과 품질향상을 위한 연구시간, 고객만족을 위한 시간, 고 객에게 제출해야 할 성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 구축을 위한 기술 및 원가 자료 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축나게 된다. 현장의 경비는 20개 정도의 비목으로 구성돼 있고, 각 비목별로 월별 상한선이 주어져 있다. 어느 품목은 한번 쓰면 몇 달간 쓰지 않는 데도 매월 똑같은 액수가 배당된다. 예를 들면 컴퓨터 잉크는 7-8만원 한다. 그런데 사무용품비는 매월 5천원씩 책정돼 있다. 14개월 치의 행정 비를 합쳐야 잉크 하나를 살 수 있다. 잉크는 사야하고 잉크 살 예산이 없는 현장은 자기 돈으로 잉크를 사거나 아니면 다른 비목을 전용해 쓰고 가짜 정리를 해놓는다. 이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떻겠는가. 이러한 식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다보면 기분이 상하고 본부 간부 및 사장에 대한 냉소적 분위기가 싹튼다. 불과 몇 푼 되지 않는 예산을 이런 식으로 통제하면서 얻는 것은 불과 수십만원 단위지만 잃는 것은 수천-수억 원이 될 것이다. 소탐대실인 것이다. 사원이 100만원의 봉급을 받는다고 치자. 사원이 그 돈을 부인에게 주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현실에 맞게 창의적으로 예산을 사용한다. 하지만 만일 100만원 중에서 3만원은 노랑색을 칠해서 쌀 사는 데만 쓰게 하고, 4만원은 파란색을 칠해서 문화비로만 쓰라고 해 보자. 이렇게 100만원을 10여 가지의 칼라로 나누어주고 각 칼라별로 목적을 지정해주면 얼마나 불편하고 비경제적일가. 쓰다보니 파란 돈은 남고 노란 돈이 모자란다. 파란 돈은 반납하고 노란 돈은 자기 주머니에서 내 쓴다. 이를 바꾸어 달라고 하면 행정이 불편하고 잔소리를 듣는다. 그게 싫어서 자기 돈을 쓴다. 더러는 가라 정리를 한다.어느 전문가는 이를 Colored Money System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군에서도 20년 전에 타파를 시도했던 이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초일류기업이 고수하고 있다. 타파하라고 하면 할수록 더 보배처럼 보존하려 한다. 직급이 높을수록 더 많이 저항한다. 융통성을 주면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 하나 타파하지 못하는 답답한 간부, 답답한 기업인들이 입으로는 모두다 벤처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