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가씨: 집에서 선보라고 재촉한다. 놀고 먹는 꼴을 못 보겠다며 엄마의 구박이 대단찮다. 아직 결혼하기에 난 어리다고 생각이 든다. 뭐 해놓은 것도 없고... 특히나 짜릿한 사랑도 없이 그냥 선보고 결혼한다는건 너무 억울하다. 어디 피난처를 마련해야겠는데... 자취생: 만화방앞에 아르바이트생 모집한다는 광고가 붙었다. 그녀를 항시 볼 수 있는 기회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이 되면 그 만화방 라면사업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난 학생이다. 그녀를 점찍고 나서부터 학생이라는 신분이 부담이 된다. 맞다 대출시키면 되겠구나. 그리고 오후만 일해주면.. 내일은 또 집에 내려가야 한다. 집에 갔다와서도 계속 구하고 있으면 한번 도전해보지. 사랑은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집에 정장을 입고 집에 갈까? 아직 취직도 안되었는데.. 앞으로 면접보러 갈 일이 생길건데.. 그리고 어쩌면 그녀와의 만남도.. 아껴 두자. 만화방총각: 요즘들어 이혼한 그녀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가을도 끝이나고 겨울이 다가온다. 그녀가 한없이 추운 겨울을 맞이할 것 같다. 빨리한번 그녀의 음반집을 가봐야하는데..그래 쇠뿔도 단김에 뽑으랬다고. 오늘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붙이자. 붙이고 한 삼십분이나 흘렀을까? 아직 이른 시간인데 누군가 만화방문을 열었다. 추리닝차림의 여자다. 단골아가씨다. 왠일로 아침부터... 그녀의 목소린 인사말고는 첨 들은거 같다. "저기요. 아르바이트생 구한다고 그러셨죠?" 백수아가씨: 아침에 또 쌀사러갔다. 엄마는 그냥 쌀한가마니 사다가 먹지, 왜 조금씩 사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 또 박카스에 초코파이 드시고 출근하셨다. 정이 참 넘치는 아침식사다. 그리고 쌀은 왜 꼭 아침에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쌀사러 가는데 만화방앞에 아르바이트생 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글자가 참 이쁘다. 만화방아저씨가 썼나보다. 기회다. 쌀을 집에 갖다놓고 바로 만화방으로 갔다. 만화방에 아무도 없다. 나한테 관심도 가지고 있는거 같은데 백프로 날 채용할 것 같다. 근데 반응이 시원찮다. 누구 생각해논 사람이 있다고 그러는데... 오늘 저녁쯤 다시 한번 와줄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야 자존심 상하네... 옛날같으면 두말않고 돌아섰을텐데, 백수고 만화방아저씨도 맘에 들고해서 참았다. 저녁먹고 갔더니 내일오후 3시부터 나오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괜히 한번 튕겨본거구나. 오후 3시부터 끝내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시간당 이천원으로 해서 계산하자고 그랬다. 좋다고 했다. 야 나도 직장이 생겼다. 월급받으면 아예 그돈으로 립스틱 종류별로 다 사버려야지... 자취생: 수업도 일찍 끝나고 내일 집에 내려갈 준비를 할려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만화방 앞 구인광고는 아직 붙어 있다. 그녀 때문에 보기시작한 만화가 재밌다. 만화방을 들어갔는데, 만화방아저씨가 혹시 아르바이트할 생각없냐고 물어보았다. 해버릴까? 하지만 학교 때문에 힘들거 같다고 말했다. 아저씨가 이상한 눈빛으로 학생이었냐고 물었다. 괜히 기분이 그렇다. 학생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대답을 듣고 "아 그랬어요. 그럼 오전에 온 사람으로 해야겠다. 난 학생이 참 맘에 들었었는데, 좀 아쉽네요."라고 그 아저씨가 말했다. 뭐야 벌써 구했어? 누굴까? 나보다 아주 나이어린 고딩이나 아니면 아예 나보다 나이 훨씬 먹은 유부남이었음좋겠다. 그 아르바이트녀석이 단골인 그녀한테 관심가질까봐 두렵다. 학생이고 뭐고 그냥 한다고 그럴껄. 그녀가 오후늦게까지 오지를 안했다. 할 수 없다. 다음주에 봐요. 만화방총각: 단골아가씨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결정했다. 그 무지하게 만화좋아하는 녀석이 학생이랜다. 그럼 그때 그머리로 학교를 갔단말이야! 그 뻔뻔한 배짱이 놀랍다. 오히려 잘됐다. 단골 그아가씨 꾸밀때는 상당히 예쁘던데. 생각지도 않던 그 아가씨하고 이제는 알게되는구나. 조금 설레인다. 백수아가씨:후후. 내일부터 만화방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구나. 만화방 주인아저씨하고는 자연스럽게 알게되겠지. 어쩌면 뭔가 사연있는 인연이 될지도... 어릴적 첫사랑. 고등학교 때의 선생님을 향한 짝사랑. 대학때는 아쉽게도 가슴을 절이게 한 사연이 없었는데..기대된다. 엄마한테 나도 취직했다고 했다. 취직이고 뭐고 빨리 시집이나 가랜다. 만화방에 취직했다고 그랬다간 당장 팔려갈 거 같아 그말은 차마 못했다. 밤에 잠자리에 드는데 나를 스쳐간 그래도 기억에 남는 사내들을 떠올려보았다. 제법 되는구나. 만화방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리고..그 요즘 자주 눈에 띠는 낯이익은 녀석도 이상하게 떠올려졌다. 자취생: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다. 벼베기를 끝낸 논바닥이 알몸을 드러내 부끄러운듯 움츠려있다. 집으로 내려갈때면 항상 마음이 울쩍하다. 다시 올라올때의 아쉬움을 먼저 느껴서 그런가보다. 더군다나 아르바이트생이 생긴 마당에 그녀를 만화방에 홀로 남겨두고 왔다는 생각이 날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집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니 울쩍한 마음이 가셨다. 몇달동안 비어있던 내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온기가 있는걸루 봐서 어머니가 나온다고 낮부터 보일러를 켜놓았었나보다. 자취방과는 다른 아늑함을 준다. 내 어릴적, 사춘기적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방이다. 고등학교때 써놓은 시집하고 사진첩을 꺼내보았다. 유치한 시와 까까머리의 내모습이 귀엽다. 중학교, 고등학교 앨법들도 보았다. 다 남학교만 나와서 그렇게 볼건없지만 소식이 끊긴 친구들의 모습이 새롭다. 하하 기계과 들어가서 대학졸업앨범도 남자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여자하고 나오는구나. 빨리 졸업앨범을 보고싶다. 그리고 우리동네 그녀. 그녀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만화방총각: 아침에 만화방을 보면서 억지로 내 소설의 글을 이어갔다. 오늘 내마음속 그녀의 음반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설레임인지 맘이 떨렸다. 오후에 단골아가씨가 왔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게 왔다. 정장차림은 아니지만 다른 날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세련된 옷 차림이다. 화장은 안했지만 얼굴이 뽀얗고 이쁘다. 만화방 일에 대하여 가르쳐주었다. 요즘은 주문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 라면 끓이는 곳도 가르쳐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최혜지라고 그랬다. 또 나이는 26살이라고 그랬다. 놀랍다. 난 한 스물두세살로 밖에는 생각안했는데... 말놓기가 그렇다. 나보다 한살밖에는 적지가 않다. 나보고 뭐라 부르면 되냐고 물어봐서 그냥 이름부르라고 그랬다. 이름 가르쳐줄려고 그랬는데 갑자기 병신이라고 욕을 한다. 뭐 이런게 다 있냐? 좋게 봤는데... 생각해보니 간판때문인거 같다. 이 아가씨 우리단골이었지.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다시한번 애써 떼어놓은 그 '신'자 붙인놈이 밉다. 잘해보자며 내이름은 이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신 이병이라고... 백수아가씨 :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취직된거 때문에 배짱으로 밥차려 달라고 엄마한테 때 쓰다가 쫏겨날뻔 했다. 결국 엄마 아침까지 내가 차려드렸다. 엄마가 아침 안 드신걸루 봐서, 오늘도 아빠는 초꼬파이에다 박카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가 되어 만화방에 갔다. 학교다닐때처럼 조금 꾸몄다. 화장도 일부러 옅게 하고 갔다. 설레이는 맘으로 만화방문앞에 섰다. 세시가 될려면 아직 이십분이 남았다. 퀸카였다고 자부한 내가 약속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일찍 들어간다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만화방 앞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붙혀논 신자가 뿌듯해 보인다. 시간이 되어 만화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만화방아저씨가 반갑게 날 맞이해주었다. 만화방 보는 일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빌려가는 사람 장부를 보여도 주었고, 시간당 얼마이며 단골같다 싶은 사람은 삼십분까지는 시간넘겨도 그냥 봐주라고 그랬다. 라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내가 없을때 라면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끓여주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아임에프때문인지 라면시키는 사람이 없으니 수고스러울 일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호호. 아직 자기라면 끓이는 솜씨를 모르나보다. 나니까 그때 먹어줬지. 이름을 물어보길래 나이까지 말해주었다. 왜이러는지 몰라? 그의 나이가 알고 싶어서 그랬다. 그는 27살이고 그냥 이름을 불러 달랬다. 이름이 이상한데..불러달래니 할수 없이 병신이라고 한번 불러 주었다. 갑자기 그가 황당한 듯 화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생각하더니 웃으며 자기 이름은 이병. 신이병이라 그러며 잘해보자고 했다. 그럼 간판의 이병 신은 뭐야? 그때 떨어진 '신'자 일부러 떼어 놓은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취생: 고향방문 이틀째다. 친구를 만나 당구도 치고, 자기 애인자랑도 들었다. 당구를 이기고 애인한테 전화하며 자랑하는 그녀석이 미웠다. 그동안 연마한 날라차기를 시험해볼 절호의 찬스였는데, 사고치기 싫어 참았다. 우끼고 공감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대생의 삼대 즐겨쓰는 용어. 밥먹었냐? 레포트좀 빌려 줘. 저여자 졸라 이쁘지 않냐? 특히 마지막 용어는 진짜 공감이 들었다. 저녁에 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갖고난 후 내방으로 가서 이번 고향방문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조금 허전한 생각이 든다. 이 기분 때문에 집에 내려올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오래된 기억의 저편까지 꺼집어 내어 보았다. 유치원앨범과 국민학교앨범을 덜추어보았다. 이 시절에는 그래도 여자친구들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유치원때는 나한테 시집온다는 여자애도 있었다. 오래되어 앨범에서도 누군지 찾을 수 없지만... 하하 나도 잘나가던때가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앨범들을 머리맡에 두고 난 잠이 들었다. 잠들기 바로직전에 우리 동네 그녀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만화방총각: 단골아가씨인 혜지씨에게 만화방을 맡기고 친구에게 들은 그녀의 음반집을 찾아갔다. 정경레코드. 쿠 그녀도 자기이름으로 음반집을 개점했구나. 맘을 먹고 찾아왔지만 막상 들어갈려고 하니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나보다 삼년이나 일찍 졸업을 했다. 그 후도 자주 만나긴 했지만 그녀가 결혼을 하고나서는 일년정도 거의 소식이 끊어진 상태다. 그녀의 음반점에서 조금 떨어진 가로수 뒤에 숨었다. 유리창너머로 그녀가 카운터에 앉아있다. 간혹 들어가는 손님들에게 미소짓는 모습은 예전에 나에게 보여준 미소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이었지만 다시 혼자가 되면 그 모습이 사라졌다. 한참이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야겠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청소부의 빗자루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가을은 이제 이 찬바람속에 내년으로 쓸려가는가 보다. 고개를 돌려 그녀가 비치는 음반집유리창을 한번 더보고 만화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수아가씨: 만화방을 혼자보고있다. 이병씨가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이병씨? 호호 그렇게 부르니 좋은데.. 만화책몇권을 뽑아 보았다. 괜찮다. 공짜로 만화책보면서 돈도 벌고. 그리고 만화방 아저씨하고 통성명도 했는데.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들어갔다. 이집 단골이었을때 눈이 띠던 녀석들이 제법있다. 들어오면서 여기 취직했냐고 묻는 놈들도 있었다. 이자리가 인기있는 자리구나. 그런데 눈에 제일 자주 띠던 그 낯익은 녀석은 오지를 않았다. 그 녀석한테는 이병씨말 데로 삼십분정도는 공짜로 봐줘야겠다. 저녁무렵에 이병씨가 돌아왔다. 같이 좀 더 있었도 되는데 처음의 서먹한 느낌이 싫었을까? 오늘은 그만 가보라고 했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보였다. 인사를 하고 만화방을 나왔다. 나오다가 간판의 '신'자를 다시한번 잡아 흔들어 보았다.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그놈의 본드는 왜 그리 강력한거야. 잘못 붙였을때는 땔수 있도록 적당해야지. '현철화학'확 망해버려라. 자취생:아침에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었다. 아버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만 남기고 출근하셨다. 먹을걸 잔뜩 싸놓은 박스를 메고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안에서 밖에서 손흔드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날씨도 잔뜩 흐려있다.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금강휴계소다. 날씨는 잔뜩흐린데다 무척이나 춥다. 눈이 올것 같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뽑을려고 줄을 섰다. 앞에 녀석이 혼자 뭐라 중얼거린다. 지윤씨 뭐라그러는데 꼭 바보같다. 차에 올랐탔는데 하늘에서 기여이 눈이 온다. 올해는 첫눈이 조금 빠른거 같다. 우쒸 만화방에 가야하는데 이눔의 눈 때문에 차가 졸라 막힌다. 서울에 도착하니 밤이다. 무려 11시간이나 걸렸다. 아까 내앞에서 커피뽑던 녀석이 눈에 띠였다. 저녀석도 우쒸를 남발한다. 추운가보다 가방에서 졸라 쪽팔리는 빨간체육복을 꺼내 속에 입는다. 괜히 몇시간 걸렸냐고 물어보았다. 창원에서 올랐왔다고 그러는데 10시간 걸렸다고 했다. 그럼 진주에서 창원까지는 한시간 걸리는구나. 만화방문이 잠겼있다. 결국 오늘은 만화방을 가지 못했다. 자취방에 도착하니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눈 때문에 늦었다고 말씀드렸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으셨다. 좀 맘이 찔린다. 내일부터 당분간 대출은 없다. 하지만 만화방은 간다. 아무래도 새로 만화방에 아르바이트한다는 녀석이 그녀한테 관심을 둘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날라차기를 연습했다. 그를 불러 이 날라차기를 보여주며 '내가 말이야. 이래뵈도 유단자야. 저아가씨는 내가 찍었으니 넌 관심꺼'라고 선제 엄포를 놓아야겠다. 날라차기를 하다가 집에서 먹을거 싸준 박스위에 떨어졌다. 바나나두개하고 귤세개가 박살이 나 있었다. 에구구 아까운 내식량. 다행히 고기절여온 그릇은 무사했다. 더욱 수련해야겠다. 만화방총각: 그녀의 어두운 모습을 보아서일까? 아침에 무척이나 감상적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 만화방문을 열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아침공기가 차다. 들어와 소설을 쓸려고 공책을 폈다. 읽어보니 참 유치하단 생각이 든다. 어제쓴 부분은 모두 줄로 그어 버렸다. 그리고 옆에 시 하나를 적었다. 제목은 꿈의 정경이었다. 공책을 덮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혜지씨가 만화방간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그녀가 인사를 하고 급히 저 방향으로 가버린다. 그쪽에 집이 있나보다. 뛰어가는 뒷 모습이 귀엽다. 그의 한손에는 쌀봉지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손에는 초코파이 한상자가 들려 있었다. 자취하나보다. 아빠가 올때쯤 먹을거 좀 많이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혜지씨한테도 나눠줘야겠다. 내가 그래도 고용주 아닌가. 오늘 정경이는 음반점을 열지 않을것이다. 그녀는 카돌릭 신자였으니까. 오후에 혜지씨가 발랄한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같이 앉아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직 어색한 느낌이 든다. 집이나 갔다와야겠다. 그래 아빠나 어머니 올때까지 기다릴것 없이 내가 가면되지 뭐. 멀지도 않다. 혜지씨한테 보조열쇠를 주며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 못 올것 같다고 그러고 가고싶을때 집에 가라고 했다. 처음부터 너무 믿는게 아닌가 싶지만 오래전부터 봐온데로라면 착하고 정직한 여자같았다. 나갈 채비를 하고 만화방문을 나서는데 혜지씨가 어디가냐고 물어보았다. 집에 간다고 그랬다. 아빠와 어머니가 반갑게 날 맞이했다. 아버지사업은 아임에프에도 불구하고 잘되나보다. 만화방 답답해서 못해먹겠다고 아빠한테 그러니까. 그것도 일종의 경영수업이라며 곧 아빠회사에 취직시켜 준다고 그랬다. 참내 그럴걸 왜 입사원서는 그렇게 많이 사와서 날 낙방의 고통 속에 몰아넣은걸까? 딴회사 취직시켜놓고 기밀문서같은걸 빼내오게 할려고 그랬나?. 경영 수업은 학교에서 우수하게 배웠다고 그러니까. 실전은 다르다고 했다. 내가 힘든거 같이 보였을까? 아빠가 차(car: 카)한대 사줄까 그러셨다. 나가지도 못하는데 차는 무슨... 그냥 내일 먹을거나 많이 싸달라고 했다. 엄마한테 아버지보고 아빠라고 그랬던거 때문에 야단 맞았다. 내가 삼대독자라 아빠. 아니지 아버지와 난 친구처럼 지내왔었다. 엄마는 4남1녀의 둘째라서 그런지 나한테 아버지처럼은 대하지 않았다. 다른 가정하고 비교한다면 엄마는 아빠같고 아빠는 엄마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난 아빠보다 엄마가 무섭다. 백수아가씨: 아침에 또 쌀이 떨어졌다. 일요일이라 아빠가 출근을 안하셨다. 엄마의 쌀 떨어졌다는 소리에 아빠는 본능처럼 냉장고문을 열더니 박카스한병을 꺼냈다. 그리고 한손은 냉장고 위 초코파이상자속으로 갔다. 초코파이가 손에 안잡히자 아빠는 입맛을 다셨다. 죄송해라. 아빠 어제 제가 마지막 남은 초코파이 먹어버렸어요. 엄마가 오천원을 손에 집어주었다. 쌀사오라는 소리겠지. 밖으로 나가는 날 아빠가 불러 세웠다. 삼천오백원을 주신다. 겟투담배 한갑하고 초코파이한상자값이다. 물품을 다사고 집으로 오는데 만화방문이 열려 있다. 일요일인데 아침일찍 문을 열었다. 이병신 만화방. 다시 '신'자를 잡고 흔들어 보았다.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갑자기 뒤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화방아저씨다. 도둑이 제발 저렸을까? 많이 놀랐다. 그냥 인사만 답하고 바로 집으로 달렸다. 쌀을 든 쪽이 훨씬 무겁다. 한쪽으로 자꾸 기운다. 집쪽으로 도는 골목에서 결국 넘어졌다. 아픈거보다 주위에 누구 없나부터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쪽팔림이 가시고나니까. 넘어질때 다친 무릎이 무척아팠다. 엄마가 굶어죽일 작정이었냐며 늦었다고 구박을 했다. 그 소리에 아빠는 천장만 쳐다보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아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을것이다. '신이시여. 저여자가 진정 내 마누랍니까?' 난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하늘이시여. 저분이 진정 우리 친엄마 맞나요?' 오후에 만화방에 출근을 했다. 출근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다. 이병씨가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날씨가 흐린게 비나 눈이 내릴거 같다. 이병씨는 또 어딜간다. 어제도 그랬지만 외출때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죽인다. 자기방으로 들어갈때와 나올때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누구처럼 칠대삼가르마도 아니고 단정한 스포츠머리다. 외출할때의 옷을 보니 상당히 고급 메이커다. 여자가 생겼나? 조심스레 어디가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그냥 웃으며 집에 간다고 그랬다. 호호. 조금 안심이 되네. 근데 내가 왜 그한테 이끌려 가는 느낌이 들까? 퀸카라 자부했는데...열쇠를 주며 집에 가고싶을때 가라고 그랬다. 날 믿는다는 증거다. 기분 괜찮은데... 오늘도 그 낯익은 녀석은 오지 않았다. 오전으로 시간대를 옮겼나? 밤 아홉시가 되었다. 슬슬 정리를 했다. 자꾸 손님이 들어오는데 다 돌려보냈다. 열시쯤 되어 만화방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야 첫눈이다. 너무 신난다. 이런 날은 아이스크림을 먹어야지. 수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만화방 앞에 누군가 섰다가 다시 걸어가는 어깨에 상자를 맨 녀석을 보았다. 낯이 익은 뒷모습이다. 그녀석이다. 어디 갔다오는 걸까? 그와 제법 거리를 두고 걷고 있는데 여기서 들릴정도로 '우쒸'를 남발하고 있다. 무슨 기분나쁜 일 있나? 첫눈오는데 기뻐해야지. 가다가 바닥에 쌓인 눈을 걷어찬다. 그 녀석이 우리집방향과 반대방향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 골목과 우리집쪽 골목이 만나는 지점에서 그를 한참동안 쳐다봤다. 미끄러운 눈길에 한쪽엔 큰가방을 메고 다른 한쪽엔 상자까지메고 그기다가 발로 눈까지 차가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도 간다. 저 골목 어딘가에 저녀석이 사나보다. 난 겨우 쌀한봉지의 무게 때문에 넘어졌는데.. 그녀석 뒷모습이 참 정겹게 느껴졌다. 자취생: 어제의 장거리여행피로 때문일까? 아침에 못일어나겠다. 대출의 유혹이 바다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버지의 공부열심히하라는 당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요 아버지 일어날께요. 일어나니 아주 낯설게 먹을게 많다. 아침에 고기 구워먹은게 몇달만이냐? 학교 가는데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어제 내가 지나온 길이 보기싫게 자욱나 있었다. 고기 먹은거 때문에 학교강의실서 수업받다가 잤다. 우리과 유일의 여학생뒤에서... 참 신기하다. 일어나니 교수도 바껴있었고. 앞에 여학생도 없다. 펼쳐있던 책을 넣고 다른 책을 꺼냈다. 출석에 답하고 또 잤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친구녀석이 깨웠다. 다음 수업은 강의실을 옮겨야 된다. 수업이 빨리 끝났다. 친구가 밥먹으러 가자고 했다. 교내식당에서 밥탈려고 줄서고 있는데 이쁜 여학생이 지나갔다. 친구가 나를 툭 치더니 "저 여자 졸라 이쁘지 않냐?" 그런다. 이쁘네. 친구한테 물었다. 너 도서관 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뭐냐고? 도서관에는 레포트 빌리러 가는 경우가 제일 많다고 그랬다. 내 친구다운 답이다. 아. 맞구나.. 불쌍한 공대생들. 드디어 유머시리즈에 올랐다. 학교를 파했다. 내일부터는 수업도 별로 없다. 오늘 수업시간에 잔거 때문에 아버지께 미안한 맘 금할 길 없다. 만화방에 누가 아르바이트 하는지 궁금했다. 달려갔다. 만화방 간판밑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요즘 자주 넘어져서 적응이 되었나? 별로 아프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낙법을 연마했나보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시 그녀가 이 쪽팔리는 상황을 보지나 않았나해서다. 다행히 그녀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옆에 지나가던 아줌마가 다큰놈이 쇼한다는 식으로 웃고 지나쳤다. 상관없다. 하루 이틀 쪽팔고 사냐. 그녀의 모습이 보고싶다. 시간도 그녀가 자주 만화방 들리는 시간이다. 만화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만화방을 먼저 둘러 보았다. 그녀가 없다. 아직 안왔구나.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보았다. 어라? 나의 그녀가 왜 저기 앉아 있지? 그 아저씨는 어딜간거야? 떨리는 맘으로 그녀와의 첫대화가 이루어졌다. "주인 아저씨는 어디 갔나요?" "예..." "아가씨는 거기서 뭐 하는데요?" "만화방 봐요" 무뚝뚝한 여자네. "아가씨가 왜 만화방 보는데요?" "취직했어요."라며 나를 뚜러지게 쳐다보았다. 아 그녀가 아르바이트생이구나. 휴 다행이다. 아직 연마되지 않은 날라차기 더 연마할 수 있겠다. 시간 티켓을 받아 자리로 갔다. 만화방에 온통 남자들 뿐이다. 더군다나 여러놈의 시선이 여기로 향하고 있다. 으아악 안돼.. 더 큰일이다. 이 많은 놈들을 상대로 모두 날라차기를 보여줘야 한단 말이냐. 차라리 카운터 보는 사람이 제비같은 놈인게 낫겠다. 만화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전을 세우고 앞으로 더욱더 노력해야겠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그녀가 오늘은 더 예뻐보이면서 불안하다. 만화방총각: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하얗다. 어머니가 먹을걸 싸놓으셨다. 그리고 힘들지만 참고 견더보라 하셨다. 아침에 아버지차를 타고 만화방으로 왔다. 아버지는 차안에서 내내 내손을 잡고 계셨다. 이 대목은 우리아빠차는 기사가 있다는걸 나타낸다. "아빠. 담에 또 갈께." 그러고 아버지께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건강조심해라는 말과 함께 회사로 출근을 하셨다. 만화방문이 잠겨있다. 만화방앞 간판밑에는 깨끗하게 눈이 쌓여있다. 담배를 물고 하늘을 보았다. 아직 흐리다. 날씨도 꽤 춥다. 정경이 생각이 난다. 그녀는 눈을 참 좋아했는데... 그리고 겨울을 가장 사랑했다. 한때는 스키장에도 같이 갔었다. 눈위에다 내가 그녀이름을 그리면 그녀는 그 이름 뒤에다 '이는 이병이를 좋아해'라고 그려주었던 기억이 생각난다. 훗. 소복히 쌓인 눈위에다 그녀이름 한번 써보았다. 그리고 바로 발로 꼬옥밟아 이름을 지웠다. 문을 열고 만화방으로 들어갔다. 만화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카운터에는 하얀 봉투 세개가 있었다. 한봉투에는 지폐가 있었고, 다른 한봉투에는 은색동전이 또다른 한봉투에는 구리빛동전이 들어있었다. 구리빛 동전봉투에 혜지씨의 글로 보이는 10시에 집에 갑니다. 오늘 번 돈입니다. 라고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장부에는 깨끗하게 빌려간 책들이름이 정리되어 있다. 야! 이아가씨가 날 감동시키네... 옷을 갈아입고 카운터에 앉았다. 카운터밑에 숨겨논 공책을 꺼내어 소설을 쓸려고 했다. 하지만 또 정경이에 대한 시와 내마음 몇자만 적고 말았다. 그리고 최혜지란 이름도 작게 적었다. 백수아가씨: 만화방에 출근을 했다. 만화방 간판 밑의 눈쌓임이 유독 반들하다. 누가 밟아 놓았다. 미끄럽겠다. 조심해야지. 이병씨는 내가 오자 보던 공책을 덮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또 어디를 갔다. 참 대화하기 힘드네. 만화방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쿵소리가 났다. 누군가 눈에 미끄러져 넘어졌나보다. 아까 반들하게 밟아놓은 간판밑이 의심스럽더니만 결국 한명 넘어졌구나. 조금 뒤 낯이익은 녀석이 만화방을 뛰쳐 들어왔다. 저녀석이 넘어졌나보다. 바보같은놈. 뭔가 따지듯 나한테 말을 걸었다. 이녀석쯤이야 튕굴수 있는 배짱이 아직 남아 있다. 최대한 무뚝뚝하게 답을 해주었다. 머리를 긁적이더니 시간표를 끊어갔다. 그녀석 시간표에 지금시각보다 30분정도 후의 시각 으로 적어주었다. 근데 이녀석이 빨리 나갔다. 시간표를 보니 겨우 오분봤다. 돈받아 말아? 실제 시간을 적용해 40분의 값을 받을까? 그냥 300원만 내라고 했다. 이상하다는 듯 300원을 내고 또 머리를 긁적인다. 잘가라. 자취생: 도저히 안되겠다. 집에가서 작전을 세워야겠다. 이런 늑대들 소굴에 그녀를 홀로 두고 나온다는게 마음이 아프지만 여기서 한가하게 만화책볼때가 아니다. 40분을 봤는데 10분 값만 내라고 그랬다. 시간표를 보니 정말 들어온지 10분밖에는 되지를 않았다. 아직 초보라 시간을 잘못 적었나보다. 천이백원을 낼려고 했는데 굳이 그녀가 10분값만 받았다. 만화방을 나왔는데 아까 넘어졌을때 날보고 웃었던 아줌마가 20킬로그램 쌀봉지를 들고 가고 있었다. 그 아줌마가 날보며 무겁다는 듯 애처로이 날 쳐다보았다. 아까 날보고 웃었던거 때문에 못 본척 할려고 했는데... 내가 워낙 착하다보니. 어쩔수 없었다. 들어줘야겠다. 내가 들어줄테니 어디가냐고 물어보았다. 그 아줌마가 그말을 기다렸다는 듯 저기 저골목으로 가면 된다고 그랬다. 우리집과는 반대방향의 골목이다. 집안에까지 들어다 주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집이다. 그 아줌마가 무척 고맙다며 나보고 착한 학생이라고 그랬다. 당연하쥐. 그리고 박카스 한병과 초코파이를 먹으라며 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그러고 몇마디 했더니만 억양이 경상도 사람같네 그러셨다. 그 아줌마도 한때 경상도에서 살았다고 했다. 아직 난 서울말이 능숙지 않나보다. 몇마디 좀 길게 말하면 꼭 고향이 어딘지 물어보는 사람이 생긴다. 그 집을 나오는데 베란다 빨래걸이에 옷가지 몇개와 부라자 세개가 걸려있다. 눈왔는데 안에서 말리지. 에고 야해라. 한개는 좀 크고 두개는 그것보다는 작고 세련되어 보였다. 이집에 딸이 있나보다. 만화방총각: 혜지씨한테 만화방을 맡겨놓고 이틀전처럼 정경이의 음반점앞으로 가보았다. 그때처럼 정경이는 카운터에 앉아 있다. 오늘은 날씨가 많이 춥다. 아직 눈의 주검들이 낙엽 위에 썩지않고 존재하고 있다. 추워서 나도모르게 음반점에 들어가고픈 용기가 생겼다. 음반점으로 들어갔다. 정경이의 시선을 피하며 음반을 찾았다. 또롯토시디를 들추면서 유식한척 "바그너의 지게우너웨젠을 찾는데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웃으며 "혹시 지고이네르바이젠아네요? 그건 독어라 그렇게 읽어야하는데..."라고 말한다. 조금 쪽팔린다. 고개를 그녀한테 돌렸다. "어머? 너 이병이 아냐?" 그녀가 날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다알고 찾아왔으면서도 난 애써 우연인것처럼 가장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난 취직은 못하고 여기서 멀지 않는 곳에 도서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혼한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척 결혼생활에 대해 물었다. 이혼했다고 순순히 말했다. 얼굴을 무겁게 바꾸고 사정을 물어보았다. 그냥 성격차이라고만 말했다. 그냥 성격차이라...? 멀지 않는곳에 있으니 시간나면 다시 놀러오겠다고 인사하고 만화방으로 돌아왔다. 만화방에는 다른날보다 손님이 많다. 대부분 이근처 대학생들같았다. 손님들 많은건 혜지씨 영향이 큰거 같다. 아버지힘 안빌리고 내돈으로 책낼수 있을거 같은 느낌이 팍온다. 오늘 정경이도 만나고 장사도 잘되고 기분이 좋다. 혜지씨의 모습은 언제나 밝다. 그리고 몰랐는데 상당히 미인이다. 그래서 왠지 옆에 있기가 쑥스럽다. 웃으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솔직히 힘들진 않을것이다. 오늘은 그만 가보고 내일보자고 했다. 그녀는 나 없을때 손님들 들어온거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녀가 집으로 갈려고 하는걸 잠시 불러 세웠다. 먹을거 싸온거. 잠깐 기다리라 해놓고 집에서 싸준 음식과 과일들을 그녀에게 나눠주었다. 힘들더라도 꿋꿋하게 생활하라는 말도 해주었다. 혜지씨가 갸우뚱거리더니 잘먹겠다며 받아갔다. 그래 자취생들한테는 먹을거 주는게 제일 좋은 선물이지. 그녀가 나가고 얼마 안있어 만화방손님들이 떼거지로 나갔다. 만화방에는 이제 다섯명도 안남았다. 그리고 잠시뒤 그 만화무지하게 좋아하는 녀석이 들어 왔다. 손에는 비닐봉투가 뭔가 푸짐하게 담겨 있는듯 들려있다. 그가 나를 아래위로 한번 촉었다. 그의 모습은 재밌다.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주었다. 그가 내 인사를 받더니 여기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어디갔냐고 묻는다. 집에 갔다고 그랬더니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나한테 맡겼다. 아까 내가 혜지씨한테 준양보다 훨씬 많은 음식과 과일들이다. "아저씨도 좀 드시고 여기 아르바이트하는 아가씨한테도 나눠주세요. 안녕히 계세요."그리고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라. 혜지씨 아무래도 어렵게 자취생활하나보다. 여기저기서 도와줄려고 하는걸 보니. 저녀석 혜지씨 친군가보다. 그래 저녀석 계속 혜지씨하고 같은 시간에 그녀의 옆에서 만화책을 봤었지... 별말이 없길래 모르는 사인줄 알았는데.. 오늘은 기분이 맑다. 정경이와도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었고 만화방수입도 늘었다. 기분좋게 소설이나 쓰자. 백수아가씨: 손님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래도 힘들진 않다. 이병씨는 저녁무렵에 돌아왔다. 오늘도 별 말 안하고 집으로 가란다. 상당히 무뚝뚝한 남정네다. 엄한 집안에서 자랐나보다. 집에 갈려는데 이병씨가 먹을걸 이만큼 싸준다. 먹을거 주는건 좋은데 왜 힘들더라도 꿋꿋하게 살라는 당부를 했을까? 내가 백순걸 아나보다. 좀 씁쓸하군. 봉지안을 보니 나한테 제법 도움이 되겠다. 숨겨놓고 나만 먹어야겠다. 또 엄마가 아침부터 쌀사오라고 하면 한번쯤 배째라 그래야겠다. 집에 갔더니 엄마가 왠일로 20킬로짜리 쌀가마니를 하나 사다 놓으셨다. 20킬로짜리는 들고오기도 그렇고 배달도 안되는데... 어떻게 들고 왔을까? 착한 총각이 조금 거들어주었다고 했다. 훗. 또 엄청 불쌍한 표정지으시며 그 총각을 쳐다보았나보다. 우리어머니... 엄마께서 빨래걷어오라고 시켰다. "엄마! 제발 내 브래지어좀 보이는데 말리지마!" 오늘밤에는 과일로 간식도 먹고, 기분이 좋다. 날씨가 엄청추워졌다.